Fly, Fly
열다섯,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모든 게 무기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이 공허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짓눌렀다.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답을 찾으려 할수록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고,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과도한 간섭과 기대, 끝없이 이어지는 통제의 나날들. 나는 바이올린 연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천재라고 칭송했지만, 나는 내 재능이 언제나 타인의 기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올바르게 키우려 노력했고, 그녀의 방식은 정확하고, 계획적이고, 또 숨 막히도록 완벽했다. 나는 어머니의 손바닥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그저 기대에 맞추는 연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을 때부터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어머니의 기대가 아닌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에,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저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때 나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말한 유일한 사람, 바로 사촌 미아였다.
“시카고로 가자,” 미아는 말했다. “가서… 우리가 살고 싶지 않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는 거야. 어차피 지금은 죽고 싶잖아?”
그 말은 충격적이었다. 나를 붙잡아 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아는 나와 같은 심정이 되어 주었다. 내 생각을 거울처럼 비춰 주었고, 그녀는 내 유일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시카고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그동안 감춰둔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를 둘러싼 허영과 기대에 얽매여 지쳐 버린 마음을 털어놓으며, 미아는 조용히 나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녀의 말이 가슴에 스며들면서, 그동안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억눌러 왔는지,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 여행이 끝난 후, 나는 더 이상 바이올린 천재가 아니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어도 좋았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내 삶을 내 손으로 쥐고 싶었다. 어쩌면 그때 미아가 “함께 죽자”고 말한 것은 ‘자유롭게 날아보자’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나는 내 삶을 살기 시작했다. 하버드 의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소아암 전문의가 되었다. 아직도 겁나는 순간들이 많지만, 그때 미아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자유와 자기 결정의 의미를 배웠다. 내가 삶을 선택할 때마다, 나는 내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지금도 생각한다. ‘플라이, 플라이.’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는 그때의 깨달음은 내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나의 삶을, 나 자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내가 지금도 의사로서 존재하는 이유다.
이제 내 차례다. 그 자유의 날개를 펼쳐, 내 환자들에게도 그런 삶의 선택과 용기를 전해 주고 싶다.
진아는 미아가 끌고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아가 대체 어디로 가려는지, 이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죽고 싶다는, 끝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이 도망길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시카고 외곽의 낡은 가정집이었다.
“어떻게 여길 알았어?” 진아가 묻자 미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다정한 미소를 띤 여자가 나타났다. 미혼모로 보이는 그녀는 미아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그들을 맞아 주었다. 그리고 진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집 안 구석에서 혼자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였다. 아이는 백인과 흑인 혼혈로, 뽀글뽀글한 곱슬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채 이방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나이는 일곱 살 정도로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워 보였다.
미아는 아이에게 다가가 그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말했다. "욕할 줄 알아?"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미아는 그 아이에게 미국식 욕을 몇 가지 가르쳐 주었고, 진아는 옆에서 충격을 받으며 미아를 지켜봤다. 진아는 처음으로 미아가 왜 이곳에 왔는지 궁금해졌다. 미아는 그저 이 아이에게 욕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어 미아는 갑자기 “트위스트 춤은 알아?”라며 아이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웃음이 터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진아는 참을 수 없는 기분 좋은 어색함을 느꼈다. 한참을 웃고 춤을 춘 뒤, 미아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산에 가자."
진아는 망설였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미아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두 사람은 미아가 알아낸 길로 산을 올랐고, 그 산 꼭대기에 다다르자 미아가 말했다.
"이제, 날아볼까?"
진아는 의아한 눈빛으로 미아를 바라봤다. 진짜 죽으러 온 거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언가 미아의 계획에 말려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미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치가 잘 보이는 절벽 끝으로 나가더니, 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선택할 시간이야. 진짜로 죽고 싶은 거야?" 미아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렸다.
진아는 망설였지만, 미아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미아는 그녀와 함께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공기가 온몸을 스치며 아찔하게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죽고 싶어?”
진아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아니, 살고 싶어!”
순간 낙하산이 펼쳐지며 두 사람은 공중에 매달린 채로 천천히 부드럽게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진아는 그 순간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듯한 자유를 느꼈다. 바람이 스치며 주위를 둘러싸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온전히 체감했다. 그동안 자신을 옥죄어 온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듯 흩어져 나가며, 진아의 마음속에 자유가 깃드는 것을 느꼈다. 하늘을 나는 쾌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땅이 가까워지며 서서히 내려앉았을 때, 그 아래에는 진아의 어머니와 미아의 오빠가 이쪽을 바라보며 난리법석을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해 달려오며 외쳤다.
“미아! 진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진아는 어머니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미아는 한껏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진아를 바라봤다. 진아는 그날 하늘을 날며 자유를 느꼈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진아는 한숨을 쉬며 마지막 구절을 정리했다. 그녀의 글은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 미아와 함께했던 그 소중한 순간을 담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미아에 대한 고마움이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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